최동원의 후계자를 꿈꾼 롯데 마운드의 천재들

2023. 7. 16. 23:38좋아하는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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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팬들을 감동시켰던 마운드의 영웅은 단언컨대 최동원이었다. 롯데를 우승으로 이끌고 해태의 선동열과 팽팽한 라이벌 구도를 만든 그는 불세출의 에이스였다.

그 후 윤학길이 100완투를 기록하며 롯데의 마운드를 지탱했으나 존재감은 최동원에 비할 수 없었다. 윤학길이 분명 대단한 투수였던 것은 맞으나 부산 팬들은 최동원처럼 폭발적인 에너지로 팀을 이끌 투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그들 앞에 천재들이 나타났다. 비슷한 시기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주 상상하곤 했다. 만약 그들이 오랫동안, 함께 활약했다면 롯데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첫 번째는 최동원에 이어 안경에이스로 불린 염종석이다. 1992년 롯데에 입단한 염종석은 그해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롯데의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1992년 정규리그 성적 : 17승 9패 6세이브 방어율 2.33 
포스트시즌 : 30.2이닝 4승 1세이브 방어율 1.47

염종석은 1992년 신인왕과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함께 받는다. 이 해의 WAR이 무려 8.40이었다. 류현진이 2006년에 신인왕과 MVP를 수상할 때가 7.78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대단한 성적인지 알 수 있다. 

당시 염종석의 인기가 대단했고 부산해서는 염태지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런 염종석은 마구에 가까운 슬라이더를 기록해 롯데의 에이스가 될 것 같지만… 혹사로 인해 그 후 어려움을 겪는다. (지금 프로야구팀들이 신인투수의 투구수 관리하는 것에 비하면 염종석의 데뷔 첫해 투구이닝은 경악스러운 것이기는 하다.) 결국 염종석은 통산 93승 133패 3홀드 14세이브 방어율 3.76을 기록했다. 롯데 팬들이 두고두고 아쉬워할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또 한 명의 천재는 주형광이다. 1994년 나타난 주형광은 데뷔 첫해 11승 5패 1세이브 방어율 3.04를 기록하더니 이듬해 200이닝 넘게 던지며 10승7패 방어율 3.05를 기록했다. 그리고 3년차였던 1996년 18승 7패 1세이브 방어율 3.36에 221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다승왕과 탈삼진왕을 차지했다. 리그를 평정한 순간이었다. 이때 그의 나이 만 20세였다. 이해 잡아낸 221개의 탈삼진은 당시 1984년 최동원(223탈삼진)에 이은 역대 2위 기록이었다. 그러니 롯데 팬들이 얼마나 열광했을까. 

하지만 주형광도 혹사의 후유증이 있었다. 특히 그는 군대에 가서도 의병 제대할 정도로 몸이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결국 의병 제대하고 경기장에 복귀했다. 그때 그는 부진했다. 하지만…

1998년 182.1이닝 11승7패1세이브 방어율 3.63
1999년 190이닝   13승12패1세이브 방어율 3.98
2000년 149.2이닝  8승6패         방어율 3.49

를 기록하며 다시금 롯데의 마운드를 이끌었다. 하지만 몸이 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200이닝 가까운 투구를 한 탓인지 팔꿈치에 문제가 생겼고… 결국 그는 짧은 전성기를 끝내게 됐다. 통산 성적 87승 82패 9세이브 22홀드 방어율 3.83이었다. 

 

그 시절은 팀에서 신인선수의 투구수 관리 등이 사실상 전무했던 시기였다. 만약 지금이라면 어떠했을까. 염종석과 주형광의 전성기가 같은 시절이었다면? 아마도 롯데 팬들이 가장 꿈꾸던 장면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그들은 통산 100승을 기록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꿈과 희망을 남겼다. 그들의 이름은 그래서 지금도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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