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리즈 명장면, 혼신으로 던진 투수들

2023. 7. 2. 03:16좋아하는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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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에서 가장 빛나는 무대라고 한다면 ‘한국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 일 년 동안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팀, 그리고 가을의 전설을 만든 팀만이 그 자리에서 우승을 놓고 다툴 수 있었다. 

한국시리즈는 많은 명장면들을 만들었다. 그중에는 강팀을 상대로 100개가 넘는 공을 던지며 완투를 해낸 선수들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비록 승리투수가 되지 못했지만, 두고두고 회자 될 정도로 혼신의 투구를 했기에 그렇다. 대표적인 투수가 바로 삼성의 박충식과 태평양의 김홍집.
 
1993년 삼성에 입단한 박충식은 언더스로 투수였다. 그해 그는 2.54의 방어율에 14승을 거두며 신인답지 않은 투구로 팀을 한국시리즈까지 이끌었다. 그는 한국시리즈 3차전에 선발 등판한다. 상대는 해태 타이거즈였다. 상대 선발은 가을 야구에 유독 강한 문희수였다.

 


경기는 팽팽했다. 그 사이 해태 타이거즈는 투수를 바꿨다. 대한민국 사람 거의 모두가 아는 선동열이 등장했다. 박충식은 밀리지 않았다. 경기는 투수전으로 계속되었다. 해태는 다시 투수를 바꿨다. 마당쇠 송유석이었다. 그해 문희수, 선동열, 송유석은 빼어난 투구로 타이거즈의 마운드를 굳건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신인투수 박충식이 혼자 상대했다. 당시 박충식은 15이닝을 던졌다. 던진 공은 무려 181개. 혼신을 다해 던진 결과 실점은 단 2점이었다.

상대가 너무 강했다. 박충식이 호투했지만 삼성은 2점 이상 거두지 못했다. 경기는 무승부로 끝났다. 비록 이기지 못했지만 사람들은 박충식을 보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라이온 킹’이 등장했다는 것을 예감했기 때문일 터. 시리즈는 결국 해태가 이겼다. 그러나 그해 한국시리즈의 영웅은 많은 이들이 추억하듯 박충식이었다. 

 


이후 박충식은 엄청난 각도의 슬라이더와 속구로 삼성의 에이스가 된다. 1994년 14승, 1995년과 1996년 홈경기에만 출전했는데 각각 9승, 8승을 거두고 1997년 13승, 1998년 11승을 거뒀다. 1990년대 중반 삼성이 암흑기라고 불리는 그 시절, 마운드를 온몸으로 지탱했다. 

그 다음해 한국시리즈에서 사람들을 놀라게 한 투수가 또 한 명 등장했다. 태평양 돌핀스 소속의 김홍집이었다. 태평양은 만년 하위권이었으나 투수진이 강화되면서 점차 성적을 내기 시작한다. 그 중심에 데뷔 2년차 승률왕 김홍집도 있었다. 1994년, 태평양은 2위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한다. 당시 태평양을 기다리던 것은 LG였다. LG는 1차전에서 삼손 이상훈을 선발로 내세운다. 태평양은 김홍집을 선발로 내세웠다.

 


경기는 팽팽했다. 두 선수 모두 실점한 점수는 겨우 1점. 이상훈이 8회에 마운드에 내려간다. 김홍집은 계속 던진다. 연장 11회말이 되었다. 점수는 여전히 1-1이다. 김홍집은 140개에 이르는 공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LG 김선진에게 끝내기 홈런을 맡는다. 결국 태평양은 경기에 패했다. 김홍집은 141개를 던지고 완투패를 당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 경기를 자주 이야기한다. 거의 모두가 LG가 무난하게 이길 것이라고 예상했던 시리즈에서 데뷔 2년차 투수 김홍집이 무시무시한 공을 던지며 각본 없는 드라마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김홍집은 이후 박충식처럼 맹활약을 하지 못했다. 어깨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주로 중간계투로 나섰고 그래서 1994년 이후 두 자리 승수를 기록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언더독의 위력을 확실히 보여준 김홍집의 위력은 여전하다. LG를 상대로 그런 경기를 펼쳤으니 오죽할까. 선동열의 해태를 상대로 한 박충식도 대단하기는 마찬가지. 그들이 만들어낸 드라마는 2023년에도 여전히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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