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에는 슈퍼 파워가 있다 - 이유의 <소각의 여왕>

2023. 8. 14. 00:35독서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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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각의 여왕>을 읽었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꽤 소소한 듯 하지만, 담고 있는 내용이 벅차다. 가슴을 저릿하게 한다고 할까. 고물상하며 먹고 사는 부녀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그래서 모든 것을 소각해버리는 여자의 이야기가 되지만 가슴에 허를 찌르는 꽤 긴 여운이 남는다.

 

그녀의 이름은 해미였다. 아버지를 따라 고물상에서 일하게 됐다. 고물상에서 일한다는 것은 꽤 고단했다. 종이나 병 같은 건 기본, 누가 냉장고를 버리면 그것을 최대한 분해해서 팔 것을 팔아야 했다. 먹고 사는 일은 아득했다. 아버지는 친구 때문에 헛돈을 썼고 고물상에서 다루는 물건들의 시세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었다. 세상은 왜 이리 반칙을 하는 것인가 싶지만,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다. 아버지 허파에 바람이 든거다.

 

그 친구의 이름은 ‘정우성’이었다. 이름은 멋지지만, 어째 하는 일은 그렇게 비열했을까. 아버지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사업에 투자한다. 아주 얻기 힘든 물질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그때부터 일도 안하고 창고에 들어가 물질을 만들기 위해 기계를 만들고 또 수리한다. 남은 평생의 시간을 온전히 그것에 바쳤다. 과학자도 이렇게까지는 안 했을 것이다. 웬만한 기업 연구원들도 놀랄 정도로 그 열정은 광적인 것이었다.

 

먹고 살아야했다. 해미는 좋든 싫든 아버지의 열정을 도와야했다. 그래서 이 일 저 일을 하다가 마침내 유품정리사까지 하게 된다. 분기점이었다. 누군가의 마지막 흔적을 치운다는 것은, 고물상을 할 때와 달랐다. 많은 사연이 있었고 그에 따른 슬픔과 비애도 있었다. 그 하나하나가 왜 이리 가슴에 쿵- 하는 소리를 내는 것인지.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에 소름이 돋았고 눈가가 시려 꽤 힘을 줘야했다. 이야기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아버지는 물질을 만들고, 딸은 물건을 태운다. 기묘한 이야기다. 동시에, 가슴을 파고드는 이야기다.

 

숨길 수 없는 것이 ‘사랑’과 ‘가난’이라고 했다. 해미는 가난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밝았고 당찼다. 그래서 더 슬펐을지도 모르겠다. 남들처럼 대학교 다니거나 취업 준비를 하면서 고민을 했으면 이런 일을 겪지 않을 텐데, 그녀는 너무나 고독한 세계 속에서 길을 걷고 있었다. 그것은 꽤 서럽다. 서럽고도 서러운데,

 

어째 그 뒷길에 반짝이는 것들이 보일까. 이상도 하지. 안타까운 이야기가 왜 이리 반짝반짝 빛나는 것일까. 아버지의 광적인 열정이 어떤 결실에 이르기 때문인가. 그녀가 비로소 여왕이 되었기 때문인가. 그들이 만나는 것들, 이야기하는 것들은 쓸모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마다 사연이 있고 그들은 그것들 부활시켰다. 그래서 어느 순간,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하게 만든다.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지점에서 말이다.

 

재밌게 읽었다. 짠하고 진한 여운이 있기도. 삶을 짓누르는 그 수많은 무거운 것들을 가볍고도 날렵하게 버티는 것도 마음에 든다. 맞다. 내가 감동은 그것의 진실함이다. 인상 쓰지 않고, 거짓위로 따위 없이, 잘 살고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의 슈퍼 파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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