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경의 <순례자의 책>을 읽고

2023. 7. 2. 03:18독서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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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고 나면 어떻게 될까? 그 후에 가게 될 저승은 어떤 곳일까? 염라대왕이 심판하는 그런 곳일까? <순례자의 책>에서 김이경은 그 저승을 독특하게 상상해내고 있다. 저승을 ‘도서관’으로 그려낸 것이다.

그 도서관에서는 무엇을 하는가? 사람들은 자서전을 쓴다. 정말 제대로 된 것을 쓴다면, 몸이 떠올라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렇지 못하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서전을 써야 한다. 책을 경원시하던 아테네 시대의 철학자들이 지금도 남아 있을 정도니 정말 인정사정없는 셈이다.

그 도서관에 발을 들여놓으면, 눈이 부시다. 어떻게 이런 상상력을 펼칠 수가 있는지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그런데 백미는, 뒤이어 나오는 김이경의 인문학적 글이다. 김이경은 저승을 도서관으로 상상한 것에 대해 설명하면서, 상상의 도서관과 상상의 책들을 이야기하고 그것에 대한 인간의 염원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들은 왜 그런 것에 염원했던 걸까? 책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인간은 책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고 있기에, 그것을 탐하려 했다. 두 번째 소설 ‘상동야화’는 그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경우다. 소설에 빠진 조선 사람들을 통해 그런 마음을 이야기하는데 금방 이해가 된다.

그런 모습 때문인지 지도자들은 ‘책’을 두려워했다. 히틀러나 진시황제가 책을 불태우려했던 것도 그런 이유다. <순례자의 책>은 그런 내용을 소설로 보여주며 ‘분서의 역사’도 알려주는데 모양새가 멋지다. 흥미로운 소설에 이어 유익한 내용까지 알려주니 당연한 일이다.

그 외에도 제본의 역사와 장서가들의 이야기, 책도둑과 중세 유럽의 도서문화 등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소설로 보여준 뒤에 짧지만, 핵심이 있는 글로 그것을 설명해주는데 제법 괜찮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녹일 내용이기도 하지만, 이제 막 책을 읽으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 달콤한 자극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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