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고 싶게 만드는 글 - 무라카미 하루키의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2023. 6. 28. 02:10독서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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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좋은 것입니다. 때로 지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지만, 그곳에는 반드시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자, 당신도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로든 떠나보세요."
 
‘네, 꼭 그럴게요.’라고 중얼거렸다. 무작정 떠난 해외에서 길 잃어서 울고 싶기도 했고 힘들어서 헉헉 거리던 모습이 생각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그곳에 있었던 무언가가 떠올랐다. 나는 왜 그것들을 잊고 살았을까.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책을 읽을 시간도 팍팍해지고 있다. 먹고 사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 그런 나에게 하루키의 말은 어떤 쨍한- 울림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를 읽었다. 하루키가 전 세계의 어떤 장소들, 라오스를 포함해 보스턴, 아이슬란드, 미코노스 섬, 핀란드, 뉴욕의 재즈 클럽 등을 여행하며 쓴 에세이다. 나는 하루키의 소설을 절대적으로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에세이, 특히 <먼 북소리>로 시작되는 여행에세이를 꽤 좋아한다. 신뢰한다고 할까.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러면서도 꽤 낭만적으로 들려주는 건 하루키만이 가능하다. 그래서 믿었고, 역시나 재밌게 읽었다.

아, 단지 재밌게 읽었다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자꾸만 생각나는 건 미국의 포틀랜드에서 먹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맛있겠다, 하는 문제가 아니다. 하루키가 갔던 레스토랑에 가서 홍합 음식도 먹고 싶고 클럽 케이크도 먹고 싶고 싶다. 와이너리 투어도 하고 싶다. 나도 가고 싶다. 식욕 자극하는 사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마음이 동하는 걸까. 이건 마치 굴튀김에 대한 이야기 같다. 갈망이 생긴다.

온천 천지인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는 순간들도 매력적이다. 아이슬란드에 대한 여행기는 거의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아니면 하루키의 문장이 매끈해서 그런가. 책을 읽다가 그곳들을 검색해봤다. 저곳이란 말이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검색해봤다. 그곳에 한번 가볼 수 있을까? 그곳에 있는 나를 상상해봤다. 글을 읽다가 언젠가, 라고 생각, 아니 다짐을 하게 되는 건 무리가 아니다. 글은 가슴 속 로망을 톡톡 건드린다. 아, 여행가고 싶다!

그런데 왜 제목은 라오스에 대한 것일까? <상실의 시대>를 썼고 유럽의 그곳도 있는데 왜? 베트남 사람도 신기했는지 하루키에게 “왜 하필 라오스 같은 곳에 가시죠?”라고 물었다고 한다. 하루키씨, 라오스에는 도대체 뭐가 있죠?
 


“라오스(같은 곳)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라는 베트남 사람의 질문에 나는 아직 명확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내가 라오스에서 가져온 것이라고는, 소소한 기념품 말고는 몇몇 풍경에 대한 기억뿐이다. 그러나 그 풍경에는 냄새가 있고, 소리가 있고, 감촉이 있다. 그곳에는 특별한 빛이 있고, 특별한 바람이 분다. 무언가를 말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다. 그때의 떨리던 마음이 기억난다. 그것이 단순한 사진과 다른 점이다. (…)
그런 풍경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쓸모가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결국은 대단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한낱 추억으로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래 여행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아, 이래서 여행을 하는 것이다. 잠들어있던 무언인가가 꿈틀- 하는 것 같다. 라오스든 아이슬란드든 보스턴이든 일본이든 간에 그렇다. 이래서 나는 하루키의 여행 에세이를 좋아하나보다. 이래서 나는 여행을 가고 싶은가보다. 이래서 나는 여행을 가야겠다. 하루키씨, 나도 그곳에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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