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책 - <참 괜찮은 눈이 온다>

2023. 7. 3. 22:49독서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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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눈이 온다>기억 속에서 내가 책을 읽고 있는 첫 장면은 식당에 딸린 한 칸 방에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문장에서 예감했다. 이 책은 마냥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가 아니라는 것을. 실제로 그랬다. 단칸방, 철거촌에서 살았고 빚쟁이들을 견뎌야 했던 이야기, 구조조정으로 직장에서 쫓겨난 이야기, 실패로 점철된 삶이 있었다.

 

소설가가 되었지만, 그래서 책도 냈지만, 뒤쫓아오는 가난과 절망은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이 책은 그것을 이야기한다. 한 작가, 한 명의 사람이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하는데 아픔이 깊을수록 글이 단단하다. 내공이 있다고 할까. 또한 고집이 느껴진다. 나쁜 의미가 아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자신의 마음에 닿아야만 썼을 것이라는 느껴진다. 나는 그 글에 반했다. 그래서 저 아득한 이야기숲을 걸어 들어갔다.

 

지나고 나면 슬픔은 더러 아름답게 떠오르는데, 기쁨은 종종 회한으로 남아 있다.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는 내가 버텨온 흔적이 있고, 기쁨이 남은 자리에는 내가 돌아보지 못한 다른 슬픔이 있기 때문이리라.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떠올리면 작가가 아버지의 가계부를 살펴보는 것부터 생각한다. 작가는 아버지가 1998년과 1999년에 썼던 가계부를 갖고 있다. 가계부에는 식대 3,000. 커피 400. 담배 1,100과 같은 것들이 적혀있다. 1998년은 작가가 등단한 해였다. 작가는 시상식에 가족 누구도 초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가 뭐였을까. 정말 3백 만원의 상금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일주일 넘게 11일자 신문을 들고 다니며 주위에 자랑하던 아빠는 한 달이 지나서야 시상식이라는 게 있고, 그곳에 내가 당신을 부르지 않았다는 걸, 시상식에는 다녀왔냐는 다른 사람의 질문을 받고서야 알았다. 내가 너에게 그렇게 부끄러운 존재인 거냐, 아빠는 격노하다 조금 울었는데라는 글을 읽으며 나는 한 가정의 어떤 모습을 상상했다. 이 기억을 떠올린, 그리고 고백이라면 고백이라고 할 수 있는 걸 작가의 마음은 어떤 걸까.

 

구조조정 당해서 회사를 그만두게 된 날의 이야기도 계속 떠오른다. 송별회를 한다. 주인공은 작가다. 그 기억을 어찌 떠올릴 수 있을까 싶지만 그 이야기에서 이 책의 제목이 등장한다. “남아 있는 방법이라고는 천천히 앞일을 도모하기 위해 일 년 넘게 깨어나지 않는 식물인간 아버지가 기다리는 집에 백수로 돌아가야 하는 그런 날에 푸짐하게 내린 눈에서 참 괜찮다는 말을 던진 건 어떤 의미일까. 세상의 끝에서 위로를 얻은 그 모습에 내 마음이 짠했다. 올해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린다면, 당장 달려나가고 싶을 정도로, 나에게 이 장면은또렷하게 남을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것도 그런 경험을 하게 한다. 잊고 있었던, 그립기도 했지만 이제는 너무 오래 떠나있었다고 생각하며 점차 희미했던 그 골목으로 걸어가니 사방팔방 빛이 난다. 글맛이 그윽하다. 서글퍼서 더 매콤하고 애틋해서 더 알싸하다.

 

문득 책을 읽고 싶다면, 나는 두말하지 않고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감동하고 싶다면, 이 책이다. 바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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