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 1 : 일본의 국민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외>

2022. 12. 28. 08:17독서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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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이에 <인간실격>을 읽었다. 그저 유명하다고 하니까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좀 실망했다. 도대체 이 책이 왜 그리 칭찬받는 것인지, 아무리 살펴봐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마도 <인간실격>을 다시 읽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읽었다. 심드렁하게 읽은 것도 아니다. 꼭꼭 씹어 먹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동시에 감동하면서 읽었다.

 

이 소설을 보게 된 건, 양윤옥이 번역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이의 번역은 믿음직스럽다. 나는 보통, 번역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고 읽는 편인데, 양윤옥만큼은 예외다. 그의 번역은 훌륭하다. 김화영, 이세욱과 함께 그 이름만으로 믿음이 가는 몇 안되는 번역가다. 그리하여 만난 - 혹시 다시 읽으면 그 맛을 알까 하는 마음에 들었다 - <인간실격>, 아, 감동!

 

‘인간실격’은 오바 요조가 인간으로써의 가치, 혹은 그 자격을 상실해가는, 혹은 실격해가는 과정을 수기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요조는 어린 시절부터 사회, 그리고 인간에 대한 어떤 두려움을 느꼈다. 타인에게 상처주면서도 그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며 희희낙락거리며 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공포심을 느꼈던 그는, 한없이 순수했다. 놀랍도록 투명에 가까운 그런 것이 요조를 지배하고 있던 것이다.

 

요조는 가면을 쓴다. 어린 시절부터 남을 웃기며 살아가는 가면을 쓴다. 성장하면서 그가 써야했던 가면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결국에 그는 지쳤던 것일까? 담배와 술… 그는 폐인처럼 살아가던 중 순수한 여인을 만나 결혼을 하고 그로 인해 조금이나마 살아갈 힘을 얻는다. 하지만 그녀마저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그런 사고가 벌어지는 동안 이 세상은, 그리고 사람들이 정말 멀쩡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는 폐인이 되고 만다. 인간실격자다.

 

요조의 모습을 따라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읽기 힘들다는 뜻이 아니라 깊고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의 막중함, 혹은 묵직함이 가슴을 한없이 무겁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한 자 한 자 열심히 읽었던 건 왜일까. 요조라는 남자가 지닌 그 순수함을 향한 동경일까? 그처럼 살아야 하는 순간이 있음을 알기 때문일까? 아니면 동정심일까? 부끄러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한없이 부끄럽기에, 정말 열심히 소설을 읽어나갔다. 그렇게, 소설의 곳곳에서 그렇게 감동하고 감탄했다. 양윤옥을 통해 만난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은, 전과 다르게 내 가슴을 한껏 채워주고 있었다.

 

<인간실격>에는 ‘인간실격’외에도 선술의 달인, 싸움의 달인, 거짓말의 달인이 등장하는 ‘로마네스트’, 개를 싫어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담긴 ‘개 이야기’등이 등장하는데 꽤 재밌었다. 그중에서 마음에 들었던 것은 소설집의 마지막에 있었던 ‘화폐’다. 화폐가 화자로 등장해 자신의 인생을 들려주는데 차가운 인생 이야기의 끝에서 등장한 그 따뜻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은 단편이다. 

 

이 글을 쓰는 건, 책을 읽은 지 좀 지난 시점이다. 그럼에도 다자이 오사무의 문체가 생생하게 떠오르는 건 왜인지, 요조의 이야기가 왜 이리 새록새록하게 내 뼘을 붉게 만드는지 모를 일이다. 아는 건 하나, 이러니까 어르신들이 고전 읽으라고 하는 거구나, 하는 느낌이 아주 절실하게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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