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을 넘어서 가슴을 울리는 명작으로 기억될 책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2022. 12. 25. 08:59독서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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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읽을 사람도 불쌍하고 읽지 않을 사람도 불쌍하고, 그냥 모두 다 불쌍해……”

 

책을 읽다가 몇 번이나 덮었던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으며 마음을 달래기가 어려워 숨을 길게 내쉬었던 순간들은 얼마나 많았던가.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건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순전히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면 뭔가 이유가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잔뜩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가, 많이 놀랐다. 책을 가득 메운 여자들의 목소리는 절박했고 간절했다. 그 목소리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나는 지금 거대한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가다듬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의 첫인상은 그렇게 강렬했고 압도적이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전쟁에 참여했던 여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논픽션이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그녀들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를 받은 이들은 당황한다. 사회와 나라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그들을 외면했고 또한 버렸다. 작가는 그녀들에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간청한다. 전쟁의 참상을 기록하겠다는 의도인가. 그렇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사라져버린’ 여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겠다는 것이다.

전쟁이 벌어진다. 독일군이 사방에서 몰려온다. 여자들은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에 소녀병사로, 간호사 또는 통신병 등이 되어 전장에 달려갔다. 군대는 남자들의 세계였다. 폭탄이 터지는 곳에 그녀들이 있었다. 총알이 빗발치는 곳에서 그녀들은 불구가 됐다. 그리하여 몇 개의 훈장을 받지만, 그뿐이다. 나라는 그녀들의 입을 막았고 그녀들을 머나먼 곳으로 추방했다. 나라만 잊은 것이 아니다. 고향도 그녀들을 외면한다. 가족도 그랬다.

기록은 담담했지만 읽는 마음은 어떤 뜨거움에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이것은 단순한 글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고통이었다. 참담한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그곳에서조차 존재하는 남성 중심의 시선이 얼마나 무자비한지를 살아있는 것처럼 그려내고 있다. 가슴이 쩍- 하고 벌어지는 것 같은 이 감정은 무엇인가. 글이, 고스란히 내게 쏟아내고 마는 것이다.

내가 바라보던 곳이 살짝, 아주 미세하지만, 분명하게 움직인 것 같다.
나는 이것을 기억하고 이야기하겠다.
그것이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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