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파 추리소설의 묘미 <제로의 초점>

2023. 9. 26. 16:14독서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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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모토 세이초의 <제로의 초점>을 읽었다. 언제나 나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을 중간에 덮곤 했다. 재미가 있고 없고, 의 문제가 아니다. 읽기가 어려웠다. 자꾸만 밀어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그의 화려한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터! 그렇다. 그는 바로 사회파 추리소설의 절대거장! 

<제로의 초점>은 전쟁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시대에 데이코가 결혼을 한다. 뜨거운 연애결혼은 아니다. 일종의 중매로, 지방에서 일하던 겐이치와 얼굴 몇 번 하고 결혼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남편은 믿음직스러웠다. 몇 가지 의문스러운 일들이 있지만, 그래도 데이코는 좋게 생각하려고 한다. 신혼여행에서 느꼈듯 겐이치 또한 자신에게 정성을 쏟고 있었으니 결혼생활은 행복하다고 믿게 된다. 그런데,

신혼여행이 끝나자마자 도쿄에서 일하기로 한 겐이치는 일을 정리하고 갈 테니 데이코 먼저 돌아가라고 한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남편이 오지 않는다. 회사에서도 당황하고, 데이코도 당황한다. 겐이치가 도쿄로 떠난 줄 알았던 현지의 동료들 또한 당황한다. 데이코는 남편의 동료인 혼다와 함께 남편을 찾아다니는데… 아, 없다! 정말 실종이다…

이 소식에 겐이치의 형인 소타로가 온다. 이상한 건, 소타로는 겐이치의 신변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실종사건에, 뭔가 아는 것이 있는 걸까? 더 이상한 건 소타로가 동네 세탁소들을 들락거리며 뭔가를 묻는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뭘 하는 거지? 그런데 더 이상한 일이 생긴다. 소타로가 누군가에게 살해된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남편의 실종사건에서 시작하는 <제로의 초점>, 시작은 평범해보였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온다. 무슨 이야기 술타래를 지녔는지 이야기가 막 나오는데, 그때마다 호기심을 살살 건드리는데… 아! 계속 읽게 만든다. 흡입력이 뛰어난데 반갑게도 이야기도 빠르게 진행된다. 굵직한 뼈대로 정면승부를 하는 탓일 게다. 그러니 계속 읽을 수밖에. 아주 쉽게 리듬을 타게 만드는데,

어느 순간, 굴곡이 커진다. 그 순간은… 단순해 보이던 사건이, 전쟁 이후 미군이 점령하던 일본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짓이든 해야 했던 여자들의 삶과 만나는 그 지점에서 만들어진다. 누가 그들을 욕할 수 있을지. 난 왜 그 모습들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를 떠올리게 되는 것인지. 마음은 왜 이리 서글퍼지는 것인지.

기대했던 울트라급 사회파 추리소설은 아니었다. 희미했다. 하지만, 그 희미한 것이 많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추리소설로서의 모습은… 약간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장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단번에 날리는 건, 역시 허를 찌르는 반전이다. 의도적인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이래나 저래나 나는 속아 넘어가 버렸다. 윽. 이야기도 멋지니,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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