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한 감동 - 황정은의 <계속해보겠습니다>

2023. 9. 1. 22:51독서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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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의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읽었다. 이 소설에는 많지 않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자매인 소라와 나나, 그리고 피붙이는 아니지만 그녀들의 가족과 같은 나기. 요양원에 있는 소라와 나나의 엄마 애자도 있다. 나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던 남자도 있다. 그리고 또 누군가 스쳐지나가지만 그 숫자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그 작은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진동은,

거세다. 이야기의 군데군데에서 느껴지는 어떤 사랑에 대한 것들 때문이다. 사랑이라면 하면 달달한 그 무엇을 상상할 법도 한데, 아니다. 갈등하는 소라와 나나의 사랑, 모든 것을 내줄 듯 사랑하는 나기와 애자의 그것은 쓰리고 아프다. 그 아픔이라는 것이 온 몸을 통과할 때를 상상해본다. 무섭다, 고 생각될 때, 소름이 돋았다.

그들의 인생은 보잘 것 없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무슨 대단한 인생을 살아서 그렇게 말하는가 싶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삶은 평범하다고 말하기에는 어렵다. 지나치게 결핍되었기 때문이다. 가난하다. 어떤 가족이 없다. 운명처럼 그들의 삶은 온통 결핍되었다. 그것이 너무나 지나쳤기에, 그들은 서로에게 더욱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나쁜 것인가, 하면,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들은 그것을 근원으로,

사랑에 아파하고 어쩔 줄 몰라하지만, 그럼에도 ‘연대’하는 그 누군가의 손짓처럼 혹은 몸짓처럼 서로를 아껴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답다. 뭐랄까. 참말로 서럽고 서러운데, 미치도록 서러운데 탁- 하는 어느 순간, 아름답다고 말하게 되는 그런 것이 있다.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백의 그림자>의 어느 지점들을 연상시킨다. <백의 그림자>의 언니 같은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다. 과연 이것은 황정은이 아니면 누가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또 하기도 했다. 이 소설은 이런 느낌이라고 할까. 저기 우울한 비가 내리는데, 맞으면 참 처량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기 그것을 통과하는데,

참 촉촉하구나, 하는 것이 번쩍 하고 느껴지는 그 순간들? 문장의 힘이 거침없다. 소설의 여운은 또 어떤지. 그동안 읽은 황정은의 소설들을 정리해보면 극단적으로 저 땅바닥을 향해 달려갈 때가 있는가 하면, 저 하늘로 경악스러울 정도로 천천히 날아오르다가 번쩍 하고 아름다워질 때가 있다. <계속해보겠습니다>는 후자다.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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