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 3 : 냉혹하고 위대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너무 유명하기에, 읽은 것 같지만 안 읽은 책이 있다. 내게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그런 책 중 하나였다. <1984>와 함께 미래소설의 걸작으로 불리는 고전인 이 소설은 여기저기에서 추천도서를 뽑을 때 반드시 언급되는 책 중에 하나이다. 제목의 반어적인 의미도 많이 언급됐다. 그래서일까. 이 책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이제야 읽었다. 정말 빠져들어서 읽었다.
<멋진 신세계>는 익히 알려졌듯이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하지만, 그것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멋진 신세계>가 본격적으로 그 ‘미래’를 그릴 때는, 참으로 놀랍다. 그 미래라는 곳, 멋진 신세계라고 하는 그곳은, 과학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다. 신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이며 사람들은 불평도 하지 않는다. ‘소마’라는 약을 먹으면 ‘현재’만 생각하면서 한없이 헤헤, 거리며 웃을 수 있는데, 그것 덕분에 사람들은 ‘우울’이라는 단어를 모르고 산다.
그 세계는 계급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진정으로, 잔인하다. 일부러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우수한 인종만 모아두었더니 다들 싸우기 때문에, 힘든 일이나 어려운 일을 할 수 있는, 스스로 열등하다고 믿는 계급이 역설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멋진 신세계는 어린 시절, 그들이 자는 동안, 열심히 교육한다. 나는 이런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야, 나는 행복해, 세계는 아름다워…
그 세계는 모든 것을 공유한다. 어머니나 아버지라는 개념도 없다. 그런 것은 야만인 지역에만 있다. 그 세계에서, 혼자 있고픈 버나드는 불평을 한다. 좀 특이한 일이었고 그로 인해 사람들은 그를 눈여겨본다. 어린 시절 교육이 잘못됐거나 하는 식으로 희화화하며 비웃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멋진 신세계는 공평하기에, 버나드는 아름다운 미녀 레니나와 함께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야만인 지역에 간다. 그들이 부르는 야만인 지역이라 함은, 인디언들이 사는 그런 곳이었다. 어머니, 아버지가 있는, 애를 낳는 그런 곳.
그곳에는 멋진 신세계를 동경하는 남자가 있다. 버나드는 그를 데려온다. 그리하여 유명인사가 되는데, 그가 데려온 남자는, 평생 꿈꾸던 대로 행복해졌을까? 멋진 신세계는 정말 그렇게 멋진 곳이었을까? 그 과학은 그를 웃게 했을까? 아니면?
이 소설이 쓰여 진 건 1932년이다. 그 아득한 시절에, 올더스 헉슬리는 과학의 질주가 만들어낸 세상이 인간을 어떻게 ‘구속’할 수 있는지를 참으로 생생하게 보여줬다. 어쩌면 이렇게도 미래를 예견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 시절에 사람들은 <멋진 신세계>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황당해했을까? 그들이 어찌 생각했든, 이 소설은 지금 이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아주 중요한, 그리고 너무나도 멋진 것으로.
멋진 소설이었다. 이 책의 제목같은 반어적인 의미가 아니라, 진심을 담아 그렇게 생각한다.